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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함무라비 (2018)


평점 : 4.5


출연 : 고아라, 김명수, 성동일, 류덕환, 이엘리야 등


*


처음 캐스팅 발표가 났을 때 고아라, 김명수 조합이면 꼭 봐야겠다, 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첫 방송 후 SNS 타임라인에서 여주인공 박차오름(고아라)의 클립 영상을 보고 반드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초반엔 본방사수를 하려고 마음먹고 4화까지 달렸지만 역시 정주행파는 매주 드라마를 기다리는 체질은 못된다 ㅎㅎ... 결국 완결까지 끝나고 나서 보게 됐지만, 이 드라마를 본방사수했다면 일주일, 일주일이 고통스러웠을 것 같아서 지금 정주행한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


고아라가 맡은 박차오름이라는 캐릭터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엄청난 열혈 판사이다. 초반엔 웃기다 싶으면서도 이거지! 싶기도 하지만 너무나 열혈파라 살짝은 답답할 때도 있고, 무모하다 싶을 때도 있지만 동료 판사이자 우배석 판사 임바른(김명수)이 말하는 대로 박차오름같은 판사는 법원에 있어야 한다. 그녀가 법원에 온 이후부터 법원은 바람잘날 없었고, 어수선한 분위기, 분열되는 분위기가 자주 조성되었지만 그녀가 없었다면 밝혀져야만할 사실들은 영원히 묻어져 갔을 것이고, 약자들은 자신들의 소리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박차오름 또한 초반엔 약자에게 엄청나게 동요하고, 마음 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동료들에게 조언받고, 꾸짖음도 받고, 직접 경험도 해보며 점점 성장해가는 과정도 보여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드라마 자체가 그동안 부당하게 판결이 나는 모습을 봐야했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주는 쪽이어서 박차오름 또한 강자보단 약자의 이야기들을 들어주고, 변호사나 검사가 할 법한 질문들도 꽤나 했지만.. 극중 한세상(성동일)이 말했듯 "검사나 변호사 중 누군가 했어야 할 질문을 하는 것 뿐"이었다. 검사가 조사 중엔 전혀 언급하지 않았던 이야기라고 하자 증인은 "그런 거 물어보지 않았잖아요!"라고 소리친다. 이 부분이 상당히 기억에 남았다. 검사 또는 변호사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질문들만을 그들에게 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하지 않은 질문들을 박차오름이라는 캐릭터가 대신 한 것뿐이다. 그 누구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나쳤기 때문에.

고아라라는 배우를 알고 있었던 건 아주 오래 전이지만 호감을 가지게 된 건 <응답하라 1994>였다. 이 작품으로 고아라의 연기력이 한층 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더 사랑 받을 수 있었기도 하다. <응사>를 이후로 <너희들은 포위됐다>에 이어 이번 작품을 본 건데, 고아라는 분위기 메이커의 성격을 가진 캐릭터를 잘 소화하는 것 같다. 능청스럽게 하는 대사를 참 잘한다. 사랑스럽게 보일 정도로. 그리고 고아라의 눈동자는 참 매력있다. 색이 독특해서 그런지 화면에 잡힐 때마다 눈이 먼저 보인다. 보는 사람을 빨려들게 하는 마성의 눈을 가지고 있달까.


박차오름의 학교 선배이자, 우배석 판사 임바른 역은 인피니트의 엘, 김명수라는 배우가 맡았다. 임바른은 평소 주위 사람들에게 딱히 관심을 주지 않는다. 친한 친구에게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을 뿐더러, 누군가 자신에게 피해주는 일을 하는 걸 아주 싫어한다. 한마디로 개인주의자. 법원에 온 이유도 '상사로부터 함부로 짤리기 싫어서, 남에게 굽신 거리기 싫어서'이다. 그런 임바른이 박차오름을 만나 점점 바뀌어가는 게 한 눈에 보여진다. 임바른은 고등학교 시절 박차오름을 짝사랑했었다. 그런 그녀와 다시 재회하고, 약자에게 크게 동요하는 박차오름과 냉정한 원칙주의자는 바른은 같은 방을 쓰게 되며 의견 차이로 자주 부딪치기도 한다. 처음엔 초임 판사인 박차오름이 또 큰 일을 벌일까 옆에서 자꾸만 관여하게 되지만 나중엔 임바른 자신 스스로 다른 이의 일에 개입하고, 부당하게 흘러가는 현실에 엄청난 분노를 한다. 특히 인상에 깊었던 건 임바른이 엄청나게 오열하는 장면이었다. 그런 장면이 두 번 정도 나오는데 유독 기억에 남는 건 두 번째 오열 장면이다. 자신이 판결을 내린 주폭(음주 폭행) 사건과 뉴스에 보도된 수백 억을 횡령한 재벌의 판결이 똑같이 징역 5년이 선고된 것을 보고 회식자리에서 못하는 술을 벌컥 벌컥 들이키다 결국 화장실에서 구토를 하게 되는데, 바른은 당연히 법대로 중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생각해 징역 5년을 선고했지만 수백 억 횡령한 사건을 보고서 자괴감에 빠져 크게 오열한다. 사실 처음부터 이 장면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싶어 두 번 정도 다시 돌려본 것 같다. 이해를 하고 나서야 그동안 포커 페이스로 임하던 바른의 모습에서 심적인 고통과 혼란이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김명수가 나오는 작품을 꽤나 많이 봤었는데, 군주에서 연기력이 많이 늘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 드라마는 보지 않아서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내 기억 속에 있는 김명수의 연기는 엄청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썩 좋지만은 않은.. 발음도 약간 잘 먹는 느낌이고 어투도 살짝 어색했던 느낌이 있어서 그닥 기대하고 보지 않았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정말 연기가 많이 늘었구나를 느꼈다. 특히 위에서 언급했던 오열장면. 예전엔 평범하게 말하는 장면 조차 어색한 부분이 많이 느껴졌는데 오열하는 부분에서 언제 그런 생각을 했던적이 있냐는 듯이 다른 생각 없이 그 장면에 집중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 완벽한 배우라고 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보이고, 그의 연기를 처음 보는 사람은 오글거림이나 어색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예전 작품부터 봐왔던 사람으로써는 김명수라는 배우가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많이 노력한게 보였고, 연기력 또한 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점점 더 좋은 연기자로 발전할 수 있을 배우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성동일 배우가 맡은 한세상이라는 캐릭터는 참 멋있었다. 조금은 성질도 있고, 감정적이고, 극중에서는 언론적으로 '막말 판사'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는 판사였지만,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행동을 하는 판사였다. 초반엔 정말 세상 까칠한 상사처럼 보여졌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진면모가 잘 보여졌던 것 같다. 특히 마지막 부분.. 너무 멋있었다. 드라마에 나온 (존재감을 보였던) 부장 판사들 중 제일 바람직하고 때로는 존경스러운 부장 판사였다.


류덕환이 맡은 바른의 동창이자, 동료 판사인 정보왕 캐릭터는 솔직히 초반에는 꼴보기 싫어진다. 부장 판사들에게 비위를 맞추고, 위험한 일을 피하려 하는 모습이 참... 도연(이엘리야)과 러브라인 조짐이 보였을 초반에는 '아.. 도연아 왜... 꼭 보왕이어야만했니..' 싶었지만 정보왕 또한 도연과 사귀고 나서부터는 위험한 일에 솔선수범(?)하게 된다. 마지막은 보왕이도 아주 바람직한 자세인 판사로 바뀌었지만.. 꼭 사랑을 하고 나서야 가능 한 거였니.. 사랑하는 사람이 계기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 문제를 깨닫고 바뀌는 것도 참 좋았을텐데.. 그래도 마지막화에서는 꽤나 멋있었던 건 인정.


박차오름은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약한 법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이 드라마는 정말 사이다 드라마, 따뜻한 드라마가 될 수도 있지만 강자와 약자의 선이 조금은 과하게 강조되어있다고 보여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드라마가 없다면 약자의 이야기는 누가 봐줄까, 싶기도 하다. 들어주는 이, 알아주는 이가 많지 않으니 이렇게 강조 되어 표현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런 문제들을 다루는 드라마에선 시청자들의 의견이 많이 갈리게 되기도 하고, 여러가지 의견이 생기기도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드라마들이 세상으로 나오는게 참 좋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로라도 약자들의 이야기를 공감해줄 수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마녀의 법정>와 맞먹을 정도로 재밌고 감명깊은 드라마였다.


여담으로 세상 심각하기만한 드라마는 아니고 감초 조연들이 분위기를 엄청 살려준다. (특히 세 이모들... 너무 웃기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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