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강력 추천(!)으로 보게 된 드라마.
어릴 적 운명이 바뀌어 버린 두 여자가 다시 만나게 되면서 일어나는 스토리이다.
일단 이런 분위기의 드라마에 이유리라는 배우가 나온다고 할 때부터 예상은 했었다. 이유리가 맡은 배역이 엄청난 악역이거나 드라마가 피튀기게 서로를 모함하고 복수하거나 입이 떡 벌어질만한 막장 스토리겠구나.
사실 아직 막장까지는 모르겠고,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얼추 맞는 것 같다.
솔직히 여주인공 민채린(이유리)은 확실히 독하다. 정말 마음만 먹으면 죽는 시늉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민채린을 보면 독하지만 여리고 알고보면 착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녀의 과거는 그녀를 독한 사람으로 만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결국 그녀는 악착같이 자신의 상황을 이겨내고, 버텨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정말 끈질기고 독하다 싶을 수도 있지만 그녀에겐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 입양된 후 자신에게 한 없이 친절하고 정말 딸처럼 대해줬던 양부모님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헌신적이다.
양엄마는 친 딸 수아를 잃어버린 아픔에 제정신일 때보다 아닐 때가 더 많고, 전보다 채린에게 정을 주지도 못하지만 채린은 어릴적의 추억과 애정을 보답하기 위해 그녀를 위해 뭐든지 한다. 그중 하나가 양엄마가 수아를 잃은 아픔에 발악을 할 때마다 어디에 있든 집으로 달려와서 어릴적 수아가 입던 옷을 입고 수아의 행세를 한다는 것.
양엄마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수아뿐이라는 걸 알지만 그녀는 그게 싫다는 말을 내뱉은 적이 없다. 슬프지만 그 마음을 숨기고 이대로 양딸로라도 살고 싶다는 것 하나 뿐이다.
채린을 못 살게구는 사람은 그녀의 할머니 나해금 여사인데, 정말 한 마디로 '빡친다.' 너무 화가나서 화난다라는 표현으로는 성에 안 찬다. 그 놈의 핏줄 타령.. 채린이 수아를 잡아 먹었다는 둥.. 못 돌아오게 부적을 쓰는 거 아니냐는 둥.. 채린을 강제로 시집 보내질 않나, 시집 보내자마자 그녀의 물건을 다 태워버리기까지 한다. 사람이 이렇게 지독하고 정 없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다. 민채린이 다른 곳에 가면 악녀느낌이 많이 나지만 할머니 앞에만 서면 순한양처럼 보인다. 채린이 할머니에게 독한 말을 듣고, 할머니의 계략에 당하는 모습이 정말 눈물줄줄이다.
채린의 힘이 되어주는 건 자신을 아직도 친 딸처럼 생각해주고 한없이 다정한 양아빠. 현재로써는 가족 중에서 채린의 편은 양아빠 한 명뿐이다. 양아빠는 채린에게 수아가 다시 돌아와도 똑같이 딸처럼 대할거라고 약속했지만 진짜 수아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 양아빠까지 등을 돌린다면 정말 채린을 봐줄 사람은 아예 없어져 버리기 때문에 정말 지금의 다짐대로 진짜 수아가 나타난 이후로도 채린의 편이 되어줬으면 하는 바람..
그렇기때문에 복수물에 등장하는 호구같은 착하기만한 여주인공은 없다. 본성은 정말 착하고 정이 많지만 그녀의 상황이 그녀를 바꿔놓았다. 드라마를 보다보면 눈을 부릅뜨고 할 말 다 하는 채린이 무섭기도 하고 정말 나쁘게 보여질 때도 있지만 모든게 자기 방어를 위한 것이고, 양부모님을 위한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독하다는 이유로는 미워할 수는 없는 캐릭터.
그런데 역시 악녀 느낌이 있는 캐릭터여서 그런 건지 몰라도.. 이유리는 앞으로 연민정이라는 수식어를 쉽게 떼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초반에 정신병원에 갇힌 후 할머니의 충복 김실장과 대화(라고 쓰고 채린의 발악이라고 읽는다.)에서 채린이 울면서 억울함을 토로하면서 김실장에게 따지고 화내는 모습이 연민정을 연상케했다.
우는 연기를 할 때 1초에 몇 번씩 안면 근육이 움직이는지 모르겠다. 중요한 건 우는 연기(특히, 울면서 발악하는 연기)를 참 잘한다는 것. 일단 그녀가 어느 드라마에서든 악녀를 맡게 된다면 연민정의 이미지를 숨길 수는 없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
현재 진짜 수아로 추정되는 하연주(엄현경)는 정말 너무 천사같이 착하다. 착하고, 착하고, 착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착한 캐릭터. 그렇다고 이 캐릭터도 호구처럼 당하는 캐릭터는 아니다. (독한 피는 못 속인다..)
이미 동거를 하며 지내고 있던 차은혁(송창의)이 민채린을 좋아하게 되면서 연주는 엄청 큰 상처를 받고, 그녀가 싫어하고 상처받을만한 일들을 조금씩 하게 된다. 이 캐릭터도 엄청난 악녀로 곧 변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착한 사람이 화가 나면 정말 무섭다라는 걸 보여주는 캐릭터인 듯.
사랑에 버림 받은 이유로 이렇게 사람이 독해질 수 있나, 싶기도 하지만.. 민채린의 상황과 비교되기 때문에 뭔가 연주의 상처와 분노가 크게 부각되어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연주의 입장에서는 차은혁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을 거라는 건 아주 이해가지만.. 차은혁은 처음부터 연주에게 마음을 떠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고, 채린과 동질감을 느끼며 나름대로 마음을 주고 받은 모습들이 보여져서..
차은혁이 차라리 엄현경과 헤어지고 나서 민채린과의 러브라인을 넣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한데, 그렇게 하기엔 하연주가 너무 착한 역이라 그녀가 마음을 굳히고 흑화(?)될 수 있는 계기가 딱히 없을 것 같긴하다.
차라리 차은혁과 하연주가 엄청 사랑했던 과거의 장면들을 보여줬더라면 '차은혁 이 나쁜 개쓰레기놈!!!'이라고 엄청 미워라도 할 것 같은데 지금까지 보여진 건 정말 연주만 은혁을 좋아한 것 처럼 나와서 뭔가 엄청 불쌍하다, 라는 느낌을 많이 받지는 못한 것 같다. 이후에 그런 장면들이 나온다면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볼 것 같지만..
하연주도 이제 막 점점 독해지고 있고, 채린과 말다툼을 하는 장면을 보아하니 정말 마음 먹으면 이 캐릭터도 엄청 쎈캐라는 걸 보여줄 것 같은 느낌.
이 드라마는 착한 호구 캐릭터 vs 악녀 의 대립구도가 아니라 악녀 vs 악녀의 대립구도를 보여줄 것 같다.
착한 주인공이 악녀에게 당하면서 엉엉 우는 걸 답답해하며 보는 것 보다 악녀끼리 서로를 못살게 굴고 복수하고, 피 튀기게 싸우는 모습을 볼만할 것 같다.
사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대충 스토리가 짐작이 간다. 어떻게 되면 굉장히 뻔한 스토리지만 예전 리뷰에도 말했듯 아무리 뻔한 스토리여도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면 정말 재밌고, 뒤가 궁금해진다.
"내가 이렇게 열연을 하는데 안 본다고..?"라고 나에게 말하는 느낌.
민채린이 자신을 미워한 할머니에게 어떻게 복수할지, 연주가 어떤 악행들을 벌이고 정체가 밝혀짐으로써 모든 상황들이 어떻게 달라질지 흥미진진함을 기대하게 만드는 드라마.
이대로 완결까지 볼 수 있길 :D
<숨바꼭질> 8월에 첫 방송한 토요드라마로, MBC에서 방영 중이다.
#TVSTORY
푹(POOQ)에서도 시청이 가능하다.